YDS

남자만들기 가위 간판 디자인 작업 시안 본문

디자인

남자만들기 가위 간판 디자인 작업 시안

스윙80 2019. 7. 9. 01:19
728x90

남자 미용실에서 의뢰가 들어왔던 다자인 간판 시안 입니다. 남자 만들기 미용실 간판입니다.

미용실은 남자들을 위한 미용 전문실입니다. 남자를 위한 미용실 여러분도 한번 가보시면 좋을 거

같아요 남자 미용실~

남자의 상징과 가위를 이용한 간판 디자인입니다. 의뢰자가 간판에 남자다움과 남자 미용실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것을 원하는 디자인 간판입니다.

가위는 는 미용사 분들이 실제로쓰는 가위를 이용하여 간판위에 가위를 표현하고 위 아래로 움직일수 있는

가위 가판 을 디자인 하였고 분당에 실제로 남자만들기 미용실 간판을 설치 하였습니다.

아쉽게 현장 설치 사진은 없습니다. ^^

미용실에 대해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한일합방 이후의 미용

1920년경 이숙종 여사의 높은 머리(다까머리)와
김활란 여사의 단발머리가 선풍을 일으킴

1933년경 오엽주 여사가 최초로 화신 미용원 개설

6.25사변 후 권정희 선생이 우리나라 최초로 정화고등기술학교 설립

많은 남자 미용사 배출

※ 우리나라 미용에 영양을 준 나라

과거 - 중국 당나라

근대 - 구미와 일본

1930년대

1930년 우리나라에서는 당시 한일합방이후 일본 유학파 신여성들의 부류가 리더였으며 당시 시인, 화가, 음악가등 소위 예술가로 부리는 선구자적인 여성들의 생활이나 결혼과, 화장품등은 일반인들에게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우리 나라 최초의 미용실은 일본 유학 시절 미용공부를 하고 귀국한 오엽주가 1933년 화신백화점안에 개설한 화신미용실이었으며 당시 퍼머값은 쌀 두섬정도의 값으로 아주 비쌌지만 장안의 부유층 여성들과 멋쟁이 여성들은 앞다투어 줄을 섰다고 한다. 이 시기 우리 나라의 젊은 여성들은 외국 영화 배우들을 따라하기를 좋아하여 머리를 어깨위의 길이로 웨이브를 주어 흘러내리게 했고 앞머리나 옆머리에는 헤어 액세서리를 이용하였으며 뒷머리를 길고 느슨하게 연출하는 것이 유행하였다. 1930년대는 대중성과 실용성에 있어서 누구에게나 무난히 어울리는 롱헤어 패턴과 짧게 자른 단발 스타일이 공존해서 유행했던 시기이다.

1940년대

광복이후 일제말에 금지되었던 퍼머너트가 다시 등장하고, 묶는 머리가 평범한 가미머리에 익숙해있던 이반 여성들도 퍼머나 세팅 또는 아이론으로 웨이브를 만들어 멋을 부렸다. 그 당시 미용기술로는 머리 전체에 웨이브를 내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기술이었기 때문에 뒷머리는 적당히 빗고 앞머리에 웨이브를 자잘히 내어 멋을 부리는 아라이 아이론이 유행하였다. 또한 머리에 싱을 집어넣고 머리 뒤를 부풀게 하는 도르마키라는 스타일이 멋쟁이 유한부인들 사이에 유행하였다. 최담을 걷는 여성이라든가, 영화배우 요정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링고 스타일은 한복이나 양장차림에도 잘 어울려서 일제시대부터 광복후까지 애용되었다

Comments